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조주(趙州) 선사의 십이시가(十二詩歌)

by chulwoo5607 2025. 2. 12.

조주선사의 <십이시가>는 자시부터 해시까지 총 12단락으로 나누어진 시구로 노선사의 하루 일과를 노래한 시(詩)입니다.

 

​조주선사는 옛 부처가 다시 출현했다고 하여 선종사에서 ‘조주 고불(古佛)’이라 칭할만큼 큰 선사이시지만, 이 시가에서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근엄한 대도인의 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유튜브 법사이신 법상스님께서 “조주선사의 12시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법문하셨습니다.

 

“세속과 그대로 어우러져 지내며, 격식이나 신분에 걸림 하나 없는 조주종심 대선사의 하루를 들어보라!

 

우리와 다를 것이 하나 없지 않은가? 얼마나 아무렇지 않은 도인의 하루인가?

 

​저 법 높으신 도인께서도, 그냥 이렇게 신세를 한탄하며, 그저 노래 한 자락 하신 것이다.

 

​언뜻 보기에 처량하다 원망스럽다를 심히 한탄하는 듯하지만, 실로 이 노선사의 노래 속에 좋다 싫다 슬프다 처량하다가

어디 있는가?

 

이렇게 도를 이루었다 하는 표 하나 내지 않고, 그저 하되 함 없이 모든 것을 다 하며 사는, 이 아무렇지 않은 이것이 바로

진짜 도인의 삶이다.

 

저도 스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닭 우는 축시​ (오전 한 시에서 세 시까지)

 

깨어나서 추레한 모습을 근심스레 바라본다.

두를 옷, 소매옷 하나 없고, 가사는 겨우 모양만 남았네.

속옷은 허리가 없고, 바지도 주둥아리가 없구나.

 

머리에는 푸른 재가 서너 말,

도 닦아서 중생 구제하는 사람 되렸더니

누가 알았으랴! 변변찮은 이 꼴로 변할 줄을..

 

이른 아침 인시​ (오전 세 시에서 다섯 시까지)

 

황량한 마을, 부서진 절, 참으로 형언키 어렵네

재공양은 그렇더라도 죽 끓일 쌀 한 톨 없구나.

무심한 창문, 가는 먼지만 괜시리 바라보나

참새 지저귀는 소리뿐, 친한 사람 하나 없구나.

 

호젓이 앉아 이따금씩 떨어지는 낙엽소릴 듣는다.

누가 말했던가, 출가인은 애증을 끊는다고..

생각하니 무심결에 눈물이 난다.

 

 

해뜨는 묘시​ (오전 다섯 시에서 일곱 시까지)

 

청정함이 뒤집어 번뇌가 되고

애써 지은 공덕이 세상 티끌에 덮이나니

끝없는 전답을 일찍이 쓸어본 바가 없도다.

 

눈썹 찌푸릴 일은 많고 마음에 맞는 일은 없나니

​참기 어려운 건 동쪽 마을의 거무튀튀한 늙은이

보시 한번 가져온 일이란 아예 없고

내 방 앞에다 나귀를 놓아 풀을 뜯긴다.

 

공양 때의 진시​ (오전 일곱 시에서 아홉 시까지)

 

인근 사방의 밥짓는 연기를 부질없이 바라본다.

만두와 진떡은 작년에 이별하였는데

오늘 생각해보니 공연히 군침만이 돈다.

 

생각도 잠깐이고 한탄만이 잦구나.

백집을 뒤져봐도 좋은 사람은 없고

오는 사람은 그저 마실 차나 찾는데,

차를 마시지 못하면 발끈 화를 내며 간다.

 

오전의 사시​ (오전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

 

​머리깎고 이 지경에 이를 줄을 누가 알았으랴

어쩌다가 청을 받아들여 촌중되고 보니

굴욕과 굶주림에 처량한 꼴, 차라리 죽고 싶어라.

 

​오랑캐 장가와 검은 얼굴 이가는

공경하는 맘은 조금도 내지 않고

아까는 불쑥 문 앞에 와서 고작 한다는 말이

차 좀 꾸자, 종이 좀 빌리자는 말뿐이네.

 

해가 남쪽을 향하는 오시​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한 시까지)

 

​차와 밥을 탁발하여 도는 데는 정한 법도가 없으니

남쪽 집에 갔다가 북쪽 집에 다다르고

마침내 북쪽 집에 이르러서는 그 수를 헤아릴 수 없네.

 

쓴 소금가루와 보리 초장

기장 섞인 쌀밥에 상추무침

오로지 아무렇게나 올린 공양이 아니라며

스님이라면 모름지기 도심이 견고해야 한다고 말하네.

 

해 기우는 미시​ (오후 한 시부터 세 시까지)

 

이 때에는 양지 그늘 교차하는 땅을 밟지 않기로 한다.

​한번 배부르매 백번 굶주림을 잊는다더니

바로 오늘 이 노승의 몸이 그러하네.

 

선禪도 닦지 않고 경經도 논하지 않나니

헤어진 자리 깔고 햇볕 쐬며 낮잠을 잔다.

생각커니 저 하늘의 도솔천이라도

이처럼 등 구워주는 햇볕은 없으리로다.

 

해 저무는 신시​ (오후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오늘도 향 사르고 예불하는 사람은 있어

노파 다섯에 혹부리 셋이라

한 쌍의 부부는 검은 얼굴이 쭈글쭈글

유마차라! 참으로 진귀하구나

 

금강역사여, 애써 힘줄 세울 필요없다네

내 바라건데, 누에 오르고 보리 익거든

라훌라(석가의 아들) 아이한테 돈 한푼 주어 봤으면.

 

해지는 유시​ (오후 다섯 시부터 일곱 시까지)

 

​쓸쓸함 제외하고 달리 무얼 붙들랴

고매한 운수납자의 발길 끊어진지도 오래인데

절마다 찾아다니는 사미승은 언제나 있다.

 

단 한마디 말도 격식을 벗어나지 못하니

석가모니를 잘못 잇는 후손이로다.

한가닥 굵다란 가시나무 주장자는

산에 오를 때뿐만 아니라 개도 때린다.

 

황혼녘 술시​ (오후 일곱 시부터 아홉 시까지)

 

컴컴한 빈방에 홀로 앉아서

너울거리는 등불을 본지도 오래이고

눈앞은 온통 깜깜한 칠흑일세

 

종소리도 들어보지 못하고 그럭저럭 날만 보내니

들리는 소리라곤 늙은 쥐 찍찍대는 소리뿐

어디다가 다시 마음을 붙여볼까나

생각다 못해 바라밀을 한차례 떠올려본다.

 

잠자리에 드는 해시​ (오후 아홉 시부터 열한 시까지)

 

문앞의 밝은 달, 사랑하는 이 누구인가

집안에서는 오직 잠자러 갈 때가 걱정이러라.

한벌 옷도 없으니 무얼 덮는담

 

법도를 말하는 유가劉家와 계율을 논하는 조가趙家

입으로는 덕담을 하나 정말 이상하도다.

내 걸망을 비게 하는 건 그렇다고 하더라도

모든 인연법을 물어보면 전혀 모르네.

 

한밤 중의 자시​ (오후 열한 시부터 오전 한 시까지)

 

마음 경계 언제 잠시라도 그칠때 있던가

생각하니 천하의 출가인 중에

나같은 주지가 몇이나 될까

흙자리 침상 낡은 갈대 돗자리

 

늙은 느릅나무 목침에 덮게 하나 없구나

부처님 존상에는 안식국향安息國香 사르지 못하고

잿더미 속에서는 쇠똥냄새만 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