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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매일여(寤寐一如)

by chulwoo5607 2025. 2. 22.

해인사 방장이었던 성철스님은 공부하는 선방수좌들이 물으러 오면, “너 화두가 오매일여 되나?” 하고

물었다고 한다.

 

그래서 “아직 안됩니다.” 하면, “아직 오매일여도 안되는 놈이 뭘 물으러 오냐.” 하면서 내쫒았다고 한다.

 

오매일여라는 말은 수행자들을 기죽게 만드는 말이다. 나도 한때 오매일여에 걸려서 오랫동안을 헤맸던

경험이 있다.

 

간화선의 창시자였던 중국의 대혜선사도 오매일여에 걸려서 자기 스승이었던 원오스님에게 여러 차례

물었던 모양이다. 그때마다 원오스님은 “망상하지 마라”고만 할 뿐, 더 이상 설명해주지 않았다.

 

그러다가 모든 부처님의 출신처(出身處)를 묻는데, “훈풍이 남쪽에서 불어오니, 전각이 시원하구나

(薰風自南來 殿閣生微涼)” 라는 원오스님의 법문을 듣다가 깨닫게 되어 오매일여를 해결했다고 한다.

 

보통 선방에서 화두공부 하는 사람들은 화두를 들어서 꿈속에서도 화두가 끊어지지 않고 깊은 숙면에서도

화두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고 하면서 오매일여를 깨달음의 척도로 삼는 경우가 많다.

 

꿈속은 물론이고 더 깊은 숙면에서 화두를 놓치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능력을 가진 사람은 보통 사람은

아니고 그야말로 초능력을 가진 사람일 것이다.

 

그러나 간화선의 창시자인 대혜선사나 많은 선사들의 오도 기연을 보면, 무슨 화두가 오매일여가 되어서

깨쳤다는 얘기는 거의 없고, 대부분 법문 듣다가 또는 닭 우는 소리를 듣다가 복사꽃을 보다가 똥냄새를

맡다가 깨쳤다는 일화들이 많을 뿐이다.

 

그러니까 화두가 깊은 잠속에서도 끊어지지 않는 것, 즉 오매일여를 선수행의 척도로 삼는 것은 아직도

나를 공부의 주체로 삼는 오류에 빠져 있다.

 

깊은 잠속에서 화두를 들고 있다는 것은 깊은 잠속에서조차 정신 차린 상태를 유지하고자 하는 강한 내가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일여(一如)는 내가 노력으로 조작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고, 본래 법(法)의 영역이다.

 

내가 노력해서 얻는 오매일여라는 것은 영원한 것이 아니고, 내가 노력을 안하면 잃을 수도 있는 상대적인

것에 불과하게 된다.

 

따라서 진정한 오매일여는 그런 상대적인 노력, 조작으로 얻어지는 것이 결코 아니고, 법(法)이 본래 오매

일여인 것이다.

 

그러니까 법을 깨닫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화두를 깊은 잠에서까지 놓치지 않는 그런 엄청난 노력을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다. 그것은 거꾸로 수행하는 에고만 강화시킬 뿐이다.

 

우리가 분별의 세계에 있으면, 잠잘 때(寐)와 깰 때(寤)가 분명하게 다르다. 그래서 오매일여라는 이런 말을 들으면, 오매일여라는 어떤 경지가 따로 있는 것처럼 여겨지게 되고, 그런 경지를 추구하게 된다.

 

그러나 법을 깨닫고 보면, 잠잘 때(寐)와 깰 때(寤)가 똑같다는 걸 알게 된다.

 

“잠잘 때가 언제인가?” 하고 물으면, 분별 속에 있는 보통 사람은 “어젯밤”이라고 말하겠지만, 법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아니라 “잠잘 때” 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

 

또 “깰 때는 언제인가?” 하고 물으면, 분별 속에 있는 보통 사람은 “오늘 아침”이라고 말하겠지만, 법의 관점에서 보면 그게 아니라 “깰 때” 하는 지금 이 순간이다.

 

그러니까 “잠잘 때”나 “깰 때”가 똑같다. 이것이 진정한 오매일여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