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락인과(不落因果) 불매인과(不昧因果)의 이야기는 그 유명한 백장선사(百丈禪師)의 야호선(野狐禪)의 배경인데, 백장선사 어록에 나온다.
선사께서 매일 상당하여 설법하는데, 늘 한 노인이 법을 듣고는 대중들을 따라 돌아갔다. 하루는 가지 않고 있어 선사께서 물었다.
“거기 서 있는 자는 누구인가?”
“저는 과거 가섭불(迦葉佛) 때에 이 산중에 살았었는데, 한 학인(學人)이 묻기를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하였습니다.
제가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고 대답하여 여우의 몸에 들어가 있습니다. 오늘 화상께 청하오니 한마디로 깨닫게 해주십시오.”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물어보시오.”
노인이 곧 묻기를, “크게 수행한 사람도 인과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하니
선사께서 말했다. “인과에 어둡지 않습니다(不昧因果).”
노인은 말끝에 크게 깨닫고 선사께 감사의 말을 하고는
“저는 이제 여우의 몸을 면하여 산 뒤에 있으니 죽은 중을 화장하여 보내주시기 빕니다.”
선사는 유나(維那 : 절의 사무를 맡은 자)의 우두머리에게 명하여 대중들에게 제사를 지낸 후 함께 죽은 스님의 장사를 지내겠다고 알리게 하였는데 대중들은 자세한 내막을 몰랐다.
선사는 대중들을 이끌고 산 뒤의 바위 아래에 도착하여 지팡이를 휘저어 한 마리 죽은 여우를 꺼내고는 의전의 예(典禮)를 지켜 화장을 하였다.
여기서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하여 여우(野狐) 몸에 떨어졌고, 불매인과(不昧因果)라 답(答)을 하여 여우 몸을 벗어나게 했다는데,
첫째. 불락인과(不落因果)라 답한 것이 어째서 여우 몸에 떨어지게 되었을까?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대답한 사람은 불이법(不二法)이 아닌 이분법(二分法)의 안목을 가진 사람이다.
인과의 세계(世間)와 인과를 벗어난 세계(出世間)가 따로 있다. 그는 수행을 안한 사람은 인과에 떨어지지만, 수행을 많이 한 사람은 인과에 떨어지지 않고 영원한 출세간으로 간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많이 수행한 사람도 인과(因果)에 떨어집니까? 떨어지지 않습니까?” 라는 학인의 질문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고 대답한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깨치지 못했기 때문에 “인과에 떨어지지 않는다(不落因果).”고 한 대답에 대하여 확신이 없었고, ‘내가 맞게 대답한 것인가? 아니면 틀리게 대답한 것인가?’ 하고 의심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평생 이 의심을 해결하지 못하고 의심을 품다가 죽었다면, 다음 생에 의심 많은 여우 몸을 받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둘째, “인과에 어둡지 않습니다(不昧因果).”라고 대답한 것이 어째서 여우 몸에서 벗어나게 했을까?
인과에 어둡지 않다(不昧因果)는 말은 인과의 세계(世間)와 인과를 벗어난 세계(出世間)가 둘이 아니라는 불이법(不二法)을 깨친 안목(眼目)에서 나온 말이다.
불이법을 깨쳤다 하더라도 세간을 떠난 출세간에서 따로 살아가는 게 아니고, 둘이 아닌 안목으로 인과의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불매인과(不昧因果)라고 해서 어떤 일에 대한 모든 객관적인 인과를 밝게 안다는 게 아니고, 일체의 인연이 모두 한 법에서 나온다는 사실에 밝은 것이다.
일체가 인연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이 때때로 정말로 맘에 들지 않은 것들이 올라온다. 하지만, 그것은 내가 하는 것도 생각이 하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다 법이 하고, 인연이 한다. 인연은 법의 작용이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이 생각은 올라온다. 그러나 그 반대로 올라오는 것을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듯이, 사라지는 것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이 없다. 그냥 놓아두면 된다.
그러면 마음은 어떤 생각이 올라와도 인연으로 온 것처럼 인연으로 사라질 줄 알게 되고, 그러면 그것을 건드리지 않게 되고, 그러면 어떤 생각에도 걸리지 않게 된다.
그것이 바로 온갖 생각을 하지만 어떤 생각에도 걸리지 않아 마음이 공적(空寂)하여 여여(如如)한 것이다.
그처럼 세상의 일도 역시 법이 하므로 그냥 법에 맡겨 인연 따라 살면, 몸은 비록 인과에 떨어지지만 마음은 인과에 걸리지 않는다.
이것이 인과에 어둡지 않은 불매인과(不昧因果)의 도리이다.
이와 같이 불매인과의 뜻을 분명하게 알면, 누구나 여우의 몸을 벗는다. 왜냐하면 이 법을 깨닫지 못하면, 누구나 자기자신을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여우의 옷을 입고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불락인과(不落因果)와 불매인과(不昧因果) 중 어느 것이 옳은 것인가?
위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여우 몸을 받은 불락인과(不落因果)는 틀리고, 여우 몸을 벗게 해준 불매인과(不昧因果)가 옳은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러한가?
그러나 불락인과(不落因果)나 불매인과(不昧因果)라는 말이 여우 몸을 받게 하거나 벗게 하는 힘이 있는 게 아니고, 사람의 마음에 밝은 안목, 즉 지혜가 있느냐의 여부에 달려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이 지혜가 없어 말에 떨어지면, 여우 몸을 벗게 해준 "불매인과(不昧因果)"라 말해도 그르친 것이고, 지혜가 있어 말에 떨어지지 않는다면, 여우 몸을 받게 한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말해도 옳은 것이다.
따라서 불락인과(不落因果)라고 말한 그 사람이 이런 지혜의 안목이 있었다면, 애초에 여우 몸을 받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