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뜰앞의 잣나무 화두와 소염시(小艶詩)

by chulwoo5607 2025. 2. 4.

뜰앞의 잣나무 화두란 중국의 조주선사가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온 뜻(西來意)이 무엇이냐고 묻는 질문에 “뜰앞에 잣나무”라고 대답한 것에서 비롯된 유명한 화두다.

 

그리고 소염시(小艶詩)란 당나라 현종의 귀비였던 양귀비와 그녀의 애인이었던 궁궐 경비대장 안록산이 연애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연시(戀詩)다.

 

고운 맵시는 그림으로 그리지 못하리니 (一段風光畵不成)

신방 같은 규방에 앉아 애타는 심정 (洞房深處說愁情)

자꾸 소옥이를 부르나 일이 있어 아니라 (頻呼小玉元無事)

오직 님이 알아듣기를 원함이네 (只要檀郞認得聲)

 

당시 양귀비는 황제의 여인이었으므로 남의 눈을 피하기 위해 양귀비가 몸종인 소옥이를 몇 번 부르면 안록산이는 그 말을 비밀통로가 열렸다는 신호로 알아듣고 양귀비를 만나러 갔다고 한다.

 

그러면 뜰앞의 잣나무 화두가 소염시(小艶詩)하고 무슨 관계가 있는가?

 

벽암록을 지은 원오극근 스님이 오조법연 선사의 문하에 있을 때 법연스님의 지인인 진제형이라는 사람이 벼슬을 그만두고 촉나라로 가는 길에 절에 들러서 법연스님과 법담을 나누었다.

 

법연선사 : 제형은 어린 시절에 ‘소염시(小艶詩)’를 읽어본 적이 있소?

 

진제형 : 예

 

법연선사 : 그 시 가운데 후반부 두 구절(“자꾸 소옥이를 부르나 일이 있어 아니라 오직 님이 알아듣기를  원함이네”)은

제법 우리 불법(佛法)과 가까운 데가 있습니다. 자세히 살펴보시오.

 

진제형 : (형식적으로 대답했다.) 예, 예

 

​때마침 원오스님이 밖에서 돌아와 두 사람의 대화를 들었고, 진제형 거사가 가고 난 뒤 법연선사에게 물었다.

 

원오스님 : 스님께서 ‘소염시(小艶詩)’를 인용하여 말씀하셨는데, 진제형 거사가 그 말뜻을 알아들었습니까?

 

법연선사 : 그는 소리만 알아들었을 뿐이다.

 

원오스님 “ 낭군이 목소리 알아듣기를 바랄 뿐이라면, 그가 이미 그 소리를 알아들었는데 어찌하여 옳지  않다고 하십니까?

 

법연선사 : 조사가 서쪽에서 온 뜻이 무엇입니까? 뜰 앞의 잣나무니라.

                 이 ”뜰앞의 잣나무“도 소염시의 "소옥이"와 똑같다.

 

원오는 이 말에 문득 느낀 바가 있었다. 방문을 나서니 닭이 홰에 날아올라 날개를 치며 우는 소리가 들렸다. "꼬기오~"

이에 다시 혼자 말하기를, “이것이 어찌 그 소리가 아니겠는가!” 하고는 드디어 법에 계합했다.

소염시(小艶詩)에서 양귀비가 “소옥아” “소옥아” 하고 부르지만, 정작 소옥이에는 마음이 없고 오직 낭군인 안록산이 자기 목소리를 들어서 비밀통로로 와주기를 바랄 뿐이다.

 

마찬가지로 조주선사가 진리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뜰앞의 잣나무”라고 대답을 했지만, 정작 "뜰앞의 잣나무"에는 마음이 없고, 오직 자기 목소리를 들어서 진리를 깨닫기를 바랄 뿐이라는 것이다.

원오스님은 “뜰앞의 잣나무”가 “소옥이”와 똑같다는 법연선사의 얘기를 듣고 눈치를 챘다가, 방문을 나서서 닭이 우는 소리를 듣고 “이것이 어찌 그 소리가 아니겠느냐!” 하면서 법에 계합한 것이다.

 

원오는 “소옥아! 소옥아!”하는 말이나 “뜰앞의 잣나무”하는 말이나 “꼬끼요!” 하는 닭의 울음소리에서 동일한 그 무엇을 보았던 것이다.

그런데 소염시(小艶詩)에서 안록산이가 소옥이라는 말을 따라가 버리면, 양귀비를 만날 수 없다.

 

마찬가지로 뜰앞의 잣나무 화두에서도 공부하는 사람이 “뜰앞의 잣나무”라는 말을 따라가 버리면, 진리를 만날 수 없다.

 

그러나 대부분 화두 공부인들이 “뜰앞의 잣나무”라는 말에 떨어져서 “진리를 물었는데, 왜 조주는 뜰앞의 잣나무라고 했지?” 하고 의심을 일으켜서 생각속에서 조주의 뜻을 찾고 있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다.

 

그렇다면 어떻게 화두를 참구할 것인가?

뜰앞의 잣나무 화두의 속뜻은 잣나무에 있지 않고, 어디까지나 성성적적한 마음에 있으니, 이 성성적적하고 소소영영한

마음을 아는 데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두를 성성적적한 마음에다 두고서 나가되, 거친 망념이 일어나거나 경계에 떨어질 때마다 화두로서 마음을 돌이킨다. 즉 화두를 챙김으로써 스승인 내가 제자인 나에게 직지인심(直指人心)하는 것이다.

 

‘야, 정신차려. 망상이나 경계에 끌려가지 말고, 지금 네가 마음 둘 곳은 오직 여기뿐이야.’ 하고, 오직 모를 뿐인 화두로 마음을 돌이키는 것이 공부다.

 

그렇게 해서 마음이 중심이 잡혀서 크게 쉬게 되면, 여기에서 소옥이도 나오고 여기에서 뜰앞의 잣나무도 나오고 여기에서 "꼬기오~" 닭 우는 소리도 나오고, 일체 만법이 다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