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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마대사의 확연무성(廓然無聖)과 불식(不識)

by chulwoo5607 2025. 2. 2.

 

벽암록 제1칙은 중국 선종의 초조로 추앙받는 달마대사가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와 처음 불심천자라고 불렸던 양(梁) 무제(武帝)를 만나서 나눈 불법 대의에 관한 대화를 다음과 같이 싣고 있다.

 

양 무제 : 성스러운 궁극적 진리(聖諦第一義)란 어떤 것입니까?

 

달마대사 : 확 트여서 성스럽다 할 것도 없습니다. (廓然無聖)

 

양 무제 : 짐(朕)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달마대사 : 모르겠습니다. (不識)

 

양 무제는 분별세계의 대표선수고, 달마대사는 분별을 떠난 법의 세계의 대표선수로서 서로 만난 격이다.

 

당시 불심천자(佛心天子)라고 불리던 양 무제는 오직 성스러운 진리에 만 관심이 있었던 모양이다.

 

세속적인 세계를 떠나서 뭔가 성스러운 진리가 따로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 달마대사에게 물었던 것이다.

 

그런데 달마대사의 대답은 분별세계의 대표선수인 양 무제가 보기에는 황당한 것이었다. 확 트여서 성스러울 것도 없다니, 이게 무슨 해괴한 소리인가.

 

양 무제의 입장에서는 지금까지 세속적인 가치를 낮춰보고 성스러움을 높게 보고 추구해왔는데, 그것이 송두리째 부정당하는 것이다보니 얼마나 당혹스러웠겠는가.

 

이와 같은 양 무제의 모습에서 지난 날 나의 모습을 본다. 나 또한 얼마나 많은 세월을 세속을 벗어난 깨달음 세계를 추구하며 발버둥쳐왔던가.

 

그러나 분별세계를 보는 눈으로는 분별할 수 없는 세계를 결코 볼 수는 없다. 오직 마음의 눈을 떠야만 생각이 아닌 세계, 텅 비어있는 세계를 볼 수 있다.

 

이 텅 비어있는 법의 세계에서는 세속적인 것과 성스러운 것이 둘이 아니어서 따로 분별할 수가 없다.

 

따라서 성스러운 것도 따로 없고 세속적인 것도 따로 없다. 즉, 세속적인 것이 곧장 성스러운 것이고, 성스러운 것이 곧장 세속적인 것이다.

 

이러한 불이의 세계를 분별심의 입장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도 없고, 또한 받아들일 수도 없다. 

 

그래서 양 무제는 내 앞에 서서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이 사람이 도대체 누군지 궁금해서 “짐(朕)을 마주하고 있는 그대는 누구입니까?” 하고 물었던 것이다. 그랬더니 달마대사의 대답은 단호하게 모르겠단다.

 

여기서 달마대사의 “모르겠습니다(不識)”는 알고 모르는 상대적인 모름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고불미생전 응연일원상 古佛未生前 凝然一圓相

석가유미회 가섭기능전 釋迦猶未會 迦葉豈能傳

 

옛부처 나기 전에 한 원상이 뚜렷이 밝았도다.

석가도 몰랐거니 가섭이 전할손가

 

위 게송에서 “석가도 몰랐거니(釋迦猶未會)” 하는 말이나 달마대사가 말한 “모르겠습니다(不識)”는 서로 통하는 말이라고 하겠다.

 

달마대사의 불식(不識)은 생각으로는 알래야 도저히 알 수 없는 이 자리를 말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이 아닌 세계, 도저히 생각할 수도 없는 세계를 어떻게 생각으로 알 수가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 중생들은 생각이 아닌, 생각할 수도 없는 불이의 세계조차 생각으로 알아내려고 끝없이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깨닫는데, 가장 큰 장애물이다.

 

그렇다고 또한 발버둥치지 않으면, 깨달을 수도 없으니 참 아이러니한 문제다.

 

마지막으로 확연(廓然)과 불식(不識)의 관계를 살펴보자. 확연(廓然)과 불식(不識)은 서로 모순되는 말이다.

 

확연(廓然)이란 확 트여서 다 드러난 모습을 말하는 것이고, 불식(不識)이란 꽉 막혀서 알 수 없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참으로 확연(廓然)하다면 툭 트이고 텅 비어서 다 드러날 터이니 모를 것이 없을 텐데, 모른다(不識)고 하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달마대사는 앞에서는 확연(廓然)하다고 해놓고, 뒤에서는 불식(不識)이라고 했을까?

 

분별의 세계에서는 확연(廓然)과 불식(不識)은 서로 양립할 수 없는 것이지만, 법의 세계에서는 확연(廓然)과 불식(不識)이 둘이 아니어서 따로 분별할 수가 없다. 따라서 확연(廓然)과 불식(不識)이 서로 통하고, 양립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