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 혜능이 오조 홍인 대사에게 인가를 받고 그 신표로 가사와 발우를 받아서 대중들 모르게 절을 빠져나왔는데, 그것을 빼앗으려고 가장 먼저 달려 온 사람이 도명상좌였습니다.
도명 상좌와 마주친 육조 혜능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不思善不思惡). 바로 이러한 때에 어떤 것이 그대의 부모미생전 본래 면목인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말에 도명상좌는 크게 깨달았어요.
조사선은 특별한 수행을 요구하지 않는다. 육조 혜능대사가 법을 구하러 온 도명상좌에게 요구한 것은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고 잠시 생각을 멈추라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내 말을 듣고 있는 너의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인지 돌아보라는 것뿐이었습니다. 즉, 지금 무엇이 내 말을 듣고 있느냐고 묻고 있는 것입니다.
도명은 이 말끝에 깨닫고, 지금 말을 알아듣는 이것이 물을 마심에 그 물의 차고 더운 것을 아는 것과 같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부모가 날 낳기 이전에도 또 날 낳을 때에도 이미 완전하게 갖추어져 있는 본성인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용맹정진 수행하거나 또는 불교지식을 많이 공부해서 완전하게 만드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가 깨닫거나 못 깨닫거나 상관없이 누구나 이미 완벽하게 쓰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보고 있고, 지금 듣고 있고, 지금 냄새 맡고 있고.....
우리는 늘 이 속에 있고, 늘 이것을 쓰고 있기에, 쓰고 있는 이 마음을 곧장 가리켜 보일 뿐입니다.
우리가 성암 거사님을 모시고 공부하던 시절, 한번은 거사님에게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이 무엇이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저의 질문을 받은 거사님은 말없이 앞에 놓여있던 물컵을 들어서 물을 마실 뿐이었습니다.
그때 성암거사님은 과연 무엇을 가리켜 보였을까요?
그리고 이것을 깨달은 도명은 “이제 하신 그 비밀한 말씀과 비밀한 뜻 밖에 또 다시 어떤 비밀한 뜻이 있습니까?”라고 물으니, 혜능은 “그대가 만약 자기의 본래면목을 반조하면, 비밀한 뜻은 모두 그대에게 있다”라고 대답합니다.
왜 비밀한 뜻이 도명, 자기 자신에게 있다고 할까요?
이 우주에 이것을 알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자기 자신뿐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법을 전해주느니 전해 받느니 하는 말은 모두가 방편으로 하는 말일 뿐입니다.
다른 사람의 깨달음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오직 나의 깨달음만이 나를 구원할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을 깨닫는다고 해서 어떻게 나를 구원한다고 할까요?
이것을 깨닫게 되면, 오직 이것만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나의 본래면목이고, 내 몸과 마음을 포함한 삼라만상은 이 자리에서 인연따라 나투어진 허공꽃(空華)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고 허공꽃(空華)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허공꽃(空華)이 허공꽃(空華)임을 그냥 여실하게 보아서 더 이상 속지 않고 자유로울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