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나라 때 유명한 선사인 남전(南泉)의 지인 중에 육긍(陸亘)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출가한 몸은 아니었지만 스님들과 담소하기를 좋아하는 선객으로 한때 어사대부까지 지낸 관리 출신
선비였다. 그래서 곧잘 남전의 처소를 찾곤 했는데, 남전 역시 그와 대화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았다.
어느 날 육긍이 남전에게 문제를 하나 냈다. 그들은 가끔 기괴한 문제로 선문답을 주고받던 사이였기에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육긍 : "스님, 문제를 하나 낼 테니 풀어보시겠습니까?"
남전 : "그러지요.“
육긍 : "옛날에 어떤 농부가 병 속에 거위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거위는 날이 갈수록 무럭
무럭 자라 어느덧 병 밖으로 나올 수 없을 만큼 몸집이 커지고 말았습니다.
스님이라면 병속에 든 이 거위를 어떻게 꺼내시겠습니까? 단, 병을 깨거나 거위를 다치게 해서는 안됩니다."
“병속의 새” 화두는 수수께기 문제와 같은 옛날 이야기다. 결국 현실성이 없는 가상현실과 같다.
화두와 같은 가상현실 속의 문제는 생각으로는 절대 풀어지지 않는다. 왜냐 하면, 화두 자체가 생각으로 만들어진 가상현실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마치 꿈속에서 아무리 꿈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쳐도 꿈속의 일이기 때문에 꿈을 깨지 않는 한 꿈을 벗어날 수 없는 것과 같다.
결국 화두와 같은 가상현실의 문제를 풀 수 있는 것은 오직 생각의 감옥을 벗어나는 길밖에는 없다.
깨달은 사람은 더 이상 화두와 같은 가상현실에 붙들려 있지 않는다. 왜냐? 화두가 가상현실이라는 것을 확실하게 깨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제를 제시한 육긍이 말을 마치자마자 남전선사는 대뜸 그를 불렀다.
"대부!"
어사대부를 지낸 육긍을 남전은 항상 그렇게 불렀기에 육긍은 반사적으로 '예'하고 대답했다.
그때 남전선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벌써 나왔소."
이와 같이 이름을 부르고 대답할 때 화두라는 가상현실에서 눈앞의 지금 여기, 진짜 현실세계로 빠져 나온 것이다.
이러한 화두공부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이와 같이 가상현실에서 벗어나는 체험을 통해서 우리가 사는 이 세상 또한 가상현실임을 깨달아야 한다.
나라는 존재(몸과 마음) 또한 가상현실 속에서 사는 아바타일 뿐이다.
이 아바타인 내가 겪는 현실의 문제들도 사실은 화두와 같이 가상현실에 서 부딪치는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보통 사람들은 이러한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진짜라고 착각하여 자기가 해결하려고 발버둥을 친다.
마치 병속의 새를 꺼내겠다고 생각을 이리저리 굴리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현실의 문제라는 현상은 있을지언정 그 실체는 없다는 것을 잘 안다.
따라서 실제 있지도 않은 문제에 매달려 헛된 힘을 낭비하지 않고 꿈에서 깨어난다.
물론 이 말을 행여 현실의 문제에 아무런 손도 쓰지 않고 멍하게 있으라는 말로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문제가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연에 따라 최선을 다하되, 그것에 매달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어짜피 세상 일은 내 뜻이 아니라 인연에 따라 돌아가기 때문이다.
나는 오직 바로 지금 여기, 깨어있을 뿐이다.